[리:리딩 re:reading 03 리뷰]
Announcement // Statement from the Nominees of the 2017 Preis der Nationalgalerie
Berlin // Friday, Nov. 10, 2017
http://www.berlinartlink.com/2017/11/10/announcement-statement-from-the-nominees-of-the-2017-preis-der-nationalgalerie/
Haegue Yang’s “Quasi-ESP”
by SOFIA LEMOS. 12,2017
http://www.art-agenda.com/reviews/haegue-yangs-quasi-esp/
3번째 리리딩 시간에는 2번째 시간에 이어 Preis der Nationalgalerie 2017 후보자들의 성명서를 담은 기사와, 양혜규 작가 전시 리뷰를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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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Preis der Nationalgalerie 4명의 후보자인 Sol Calero, Iman Issa, Jumana Manna, Agnieszka Polska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구조적인 불평등, 후원제도, 보상, 경쟁 경향에 주목하고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명서를 작성하였다.
성명서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작품의 내용보다 작가의 젠더, 국적이 더 강조되는 언론 노출은 미술계 내 심각한 구조적 불평등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러한 강조가 다양성을 지향하는 듯이 보이는 홍보 도구로 이용되어, 끊임 없이 지속되는 악습이 표면적으로 감춰진다. 화제성이 짙은 행사보다도 기관의 일상 업무 및 프로그램에서 젠더, 인종, 경험의 다양성을 보장하자.
2. 관계 후원사 간의 기념 행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 시상식이 아닌, 작가와 작품에 주목할 수 있는 시상식 진행이 필요하다. 작가들 간의 연대, 상호지지를 방해하는 후보 작가들 간의 경쟁의식을 연출하지 말자.
3. 전시와 아티스트 토크에 준하는 아티스트 피를 보상받을 필요가 있다.
-역시 어디서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젠더와 국적에 관한 불평등, 이익관계와 결부된 제식 행사, 열정페이와 다를 바 없는 보수. 암묵적으로 항상 존재해왔기에 이제는 일상적인 불평 정도로 인식되는 구조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났다. 4명의 작가들 바람대로 성명서가 좋은 사례가 되어 대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미술진흥 중장기계획' 중 아티스트 피와 관련한 사항은 어떻게 되었는지 찾아보았다. 작년부터 국공립기관에서 시범 시행 했다는데 실상은 알 수 없고 2월 초에 관련 공청회가 있었다는 기사 뿐, 현재 진행 사항의 여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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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사는 지난해 10월 파리, GALERIE CHANTAL CROUSEL에서 열렸던 양혜규 작가의 “Quasi-ESP (유사-초능력)"전시 리뷰이다.
전시는 일직선상의 서사에서 존재하는 보통의 오감을 뛰어넘는 초능력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시작점과 중간점을 알 수 없는 시간에 개념으로 이해를 돕는데, 초능력의 경계가 인지하기 어려운 모호한 영역이기 때문에 'Quasi(유사)-'하다고 맺어놓은 듯하다. 양혜규는 일상적인 감각과 비일상적인 초감각을 재료나 소재의 혼합성으로 보여준다.
< 건축 자재상 콜라쥬 (Hardware Store Collages) > (2014~) 연작에서는 흔히 보이는 철물이나 전자부품을 익숙하지 않는 모습의 유기적인 집합체로 구성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철물 대신 신형전자제품들을 사용하여 그 역설성이 부각되었다.
< Lacquer Paintings > (1994~) 연작 역시 자연을 소재로 삼아 '시간'에 대해 보여준다. 작업 과정에서 식물 표본을 천천히 자연 건조시켜 먼지, 흙, 빗물, 곤충과 같은 주변 환경이 각인되게 표면에 니스칠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식물 표본과 함께 포착된 환경들이 건조 되는 시간의 흐름이 순서 없이 시각화된다. 이 처럼 이질적인 영역을 떼어놨다 붙였다 반복하고, 일상적인 논리를 의심하며 초능력의 경계를 건드린다.
-관념적인 표현들이 많고 복잡한 문장 구조 때문에 함께 다시 읽어본 뒤에도 말끔하게 들어오지 않는 리뷰였다. 이후에 GALERIE CHANTAL CROUSEL 홈페이지에서 전시 서문을 읽어보니 전시 전경을 상상하기 훨씬 쉬웠다. 전시 서문에서 쓰인 단어들이 리뷰에서도 그대로 쓰이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리뷰에서는 그 단어를 훨씬 꼬아서 사용하였다. 단어 차용뿐만 아니라, 작업을 해석하는 관점도 발전된 방향은 없었고 서문을 풀어해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나 싶다.
-좋은 글쓰기는 모국어든 외국어든 티가 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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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① studio practice: (사전적 정의) 작업실 관행
-도대체 이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논했는데, 당일에는 '작업실에서 수행하는 일련의 관행' 정도로 이해하기로 했다.
-좀 더 찾아보니, Tate Modern에 "Studio Pratice"라는 전시실이 있더라. 전시실은 환경과 공간이 작품에 반영되는 과정을 보이는 담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과 같은 Yahoo answers에도 현대작가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studio practice'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정확히 아는 자가 없었다...)
확실히 미술계에서 간간이 사용되는 용어인 것 같다.
-'아카이브 프랙티스'가 아카이빙을 활용한 예술적 활동을 의미하는데, 그대로 끌어와 해석해보면 작업실을 활용한 예술적 활동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전시 서문에서도 이 단어를 찾을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소재를 다루는 작업 환경과 관련된 수행' 정도의 느낌으로 해석된다.
단어② intensiveness: (사전정 정의) 격렬함, 강함
-우리는 "격렬함"이라고 해석해보았지만, 앞뒤 맥락이 너무 추상적이라 확신이 없다.
-마지막 문장에서 "studio practice"와 함께 이 단어가 쓰이는데, 소재를 혼합하거나 작업 환경을 축약하고 확장시킨다는 맥락에서 어느 한쪽에 "몰두함"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다.
단어③ domesticity: (사전적 정의) 가정, 생활 공동체
-맥락상 '가정'이라 해석하기 어색해 '생활 공동체'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양혜규 작가의 < 살림 > 작업과 관려해서 생각해보니 '가정'이라는 단어가 어감상 더 맞는 듯하다. 아, 어렵다!
- "< 살림 >(Sallim, 2009)이라는 제목의 신작은 베를린에 있는 작가의 집 부엌을 실제 크기로 재현한 조각이다. 작가에게 살림이란 비사회-경제적인 공간으로, 모든 삶의 활동을 준비하고 기획하는 장소성을 함의한다.
마사 로슬러의 < 부엌의 기호학 >(1975)을비롯하여 가치 폄하된 “여성의 노동”과 그 잠재력을 다룬 60, 70년대 많은 여성주의작업선 상에서 양혜규의 < 살림 >은 “일 하지 않는 workless” 가정domestic의 영역으로치부되어 온 부엌 공간에 대한 가치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모리스 블랑쇼, 쟝-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박준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5)
단어④ engage: (사전적 정의) (주의・관심을) 사로잡다, (~으로) 고용하다, 관계를 맺다, 맞물리다
- 4번의 리리딩 시간 동안 가장 많이 접한 단어. 그만큼 자주 보이는 단어라 쉽게 해석될 것 같지만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니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