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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rformance Artist’s Tests of Endurance Honor the Black Female Body As an artist, Ayana Evans challenges audiences not just to observe Black women’s struggles but to feel them.
by Fayemi Shakur
https://hyperallergic.com/448242/ayana-evans-medium-tings-performance/
에이야나 에반스는 그녀의 시그니처 의상인 캣수트를 입고 미술관을 행보하거나, 거리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퍼포먼스를 통해 흑인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 및 시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2015년 Newark의 게이트웨이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플랭크 포즈를 취한 채 을 읽는 퍼포먼스를 행하기도 했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자신의 퍼포먼스를 수행하며, 관객들이 그 퍼포먼스에 다양하게 개입하기를 독려한다. 예술가로서 그녀는 관객들에게 흑인 여성의 분투를 단지 쳐다만 보지말고 느낄 것을(혹은 개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난 6월 3일 미디엄팅스에서 열린 에반스의 첫 개인전의 제목으로 행한 퍼포먼스의 제목은 < 케이샤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면, 너도 그렇게 할래? >다. 케이샤는 흑인 소녀를 암시하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름이 대입되어도 좋을 것이다. 이 문장은 흔히 엄마가 우리를 달래거나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말이다. 에반스는 페인터로 교육받았지만, 여러 여성예술가들의 퍼포먼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로레인 오그래디의 “Mlle Bourgeoise Noire”, 마리아 아브라모비치의 “Rhythm 0”, 애드리안 파이퍼의 “My Calling(card)” 그리고 린다 몬타노와 테칭 시에의 일년에 걸친 퍼포먼스 “Rope Piece”를 언급한다.) 그녀는 여전히 회화를 사랑하지만, 회화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을 경험하기 원하며, 선과 색에 대한 애정은 퍼포먼스 안에 여전히 살아있다.
이번 퍼포먼스에서 그녀는 자신의 시그니처 의상인 캣수트 위에 의상 디자이너 다이애나 호프만이 디자인안 앵그리푸시캣 비키니를 껴입었다. 그녀는 얼음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빨간 힐을 신은 채 관객들의 행렬을 이끌고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서 그녀는 캣수트를 벗어던지고 비키니 차림으로 행보하고, 행렬 가운데에서 이동스피커를 통해 < 구현된 아바타: 흑인 페미니스트 아트와 퍼포먼스의 계보학 >의 저자인 유리 맥밀란(Uri McMilan)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에반스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예뻐보이는 포즈라든지, 예쁘게 보이는 필터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다르다. 한 편으로는 힐을 신고 다른 한편으로는 얼음을 빨아먹는 것, 그리고 양동이를 거리로 끌고 가면서 비키니를 입고 섹시하게 보이는 것, 이 행위는 아주 힘들다. 나는 이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진짜 살이 빠졌고 여전히 좀 더 살을 빼고 싶다. 그러나 나는 비키니나, 셀룰라이트나 이 모든 걸 지닌 진정한 당신 자신에 대한 용기를 나누고 있다.“
이후 에반스는 양동이에 한 발을 넣고 끌고 다녔으며, 양동이 안에 있는 얼음을 빨아먹었다. 그녀는 현장 지휘관이 스피커로 틀어대는 루터 밴드로스의 “Never Too Much”나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에 맞춰 관객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갤러리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다시 캣수트를 입고, 실내 계단위에 청사과를 일렬로 맞춰놓은 다음 그것들을 가끔 배어물거나 거칠게 던져버렸다. 이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면서 여성에게 부과된 죄책과 사회적 규범을 부수고자 하는 그녀의 바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는 엎드려 손과 무릎을 이용해 계단을 거꾸러 올라간다. 그녀가 장애물을 만나고 힘들어 하는 하는 것을 관객들은 지켜보며 응원하고 소리친다. 에반스의 퍼포먼스는 그녀의 약함과 두려움을 보여주지만, 우리에게 흑인여성을 다르게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흑인 여성의 꿈과 노동 그리고 신체에 대해 깊은 경의를 느끼게 만든다. 나아가 그녀는 자신의 퍼포먼스가 기존 관람객과 퍼포머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기를 원한다.